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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호 특집 분석] 여주의 오늘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7/02/13 [09:53]

여주의 오늘 

여주는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그래서 더 빛나게 가꾸어야 합니다.

 

 

선생님께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일전에 한번 만나 뵙고 저의 근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주란 도시공동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 볼까 합니다. 저의 소견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여주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습니다. 8년 전 우연히 지역의 뜻 깊은 지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계속 여주를 출입했습니다. 지금은 세종신문의 운영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주에 발을 담그고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세종이란 인물에 매료된 이후 이 고장에 숨어있는 운명과 사람들에 대한 여운 때문입니다. 

 

500년이 넘게 이 땅에 누워계신 그 분의 이야기는 박물관과 몇 마디의 말씀이 액자 속에 갇혀있기에 너무나 아까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했던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고 당대 지식인의 상징이었으며 마음먹은 바를 행하고 이루었던 실천적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임금의 부활을 꿈꾸는 당돌함도 함께 도모했습니다. 

 

이제 여주지역에서는 세종을 더 이상 박제된 성군(聖君)으로 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부활한 정신으로 모셔오자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대화의 주제였지만 천시(天時)가 아니었는지 술잔 속의 여운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십 수년 넘긴 지금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힘껏 온기를 불어넣어 그분의 생생한 음성을 듣고 지혜를 빌어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집니다.

 

우선 여주의 현주소를 듣고 본대로, 손 가는 대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삶의 바탕 ‘자연’

 

이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강이 도시의 가운데를 흐릅니다. 남한강입니다. 그리 넓지 않지만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아담한 듯 널직하고, 넓은 듯 소담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룹니다. 좀 센 듯 흐르는 북한강에 비해 남한강은 부드럽습니다. 아직 강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은 채로 고요히 흐르고 있습니다. 천만 수도서울의 생명을 적셔주고 있는 한 축이기도 합니다.

 

들판은 넓고 기름집니다. 이른 아침 흥천면의 국도변을 지나다가 해 뜨는 장면에서 마주본 벼로 가득찬 논의 햇살은 눈부십니다. 해질녘의 황금빛 석양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절창(絕唱)의 조화는 보는 사람을 넉넉하게 합니다. 비록 그 안에서 이루어가는 삶이 고단하더라도 가슴 트이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들녘과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산은 높지 않습니다. 만만해 보입니다. 그냥 들러보고 싶은 뒷동산 같습니다. 산북에서 금사로 넘어오는 고갯길은 작은 한계령 같은  낭낭함이 있습니다. 조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힘주어보는 허세 없는 근육 같습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호주관광청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산들을 보고 그랬다지요. ‘너무 아름답군요. 이 야트막한 산들의 곡선들이 사랑스러워요. 미국의 록키나 유럽의 알프스는 위용은 자랑하지만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지요. 하지만 이 산들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틀림없어요. 저렇게 나지막이 우리를 무등 태워주려고 기다리는 것 같잖아요’ 

 

저는 그 말씀을 전해 듣고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정작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60년전에 간행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고 하는군요.

 

‘강 언덕 남쪽 들판이 40여리나 곧바로 통하였으므로 기상이 맑고도 멀다. 강은 웅장하지도 급하지도 않게 동쪽에서 서북으로 흐르는데 위쪽에 마암과 벽사의 바위들이 있어 수세를 약하게 한다. 서북쪽이 평탄해서 읍이 된지가 수 천 년이 되었다.’

 

한마디로 기상이 맑고 드넓은 곳이고 과한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을 품어주는 고장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자연재해도 거의 없는 아름다운 공간은 하늘이 준 선물이기에 감사하고 동시에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입니다. 여주가 그렇습니다. 

 

 

삶의 무늬들 ‘이야기’

 

남쪽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한 과객( 科客)들이 여강길을 걸었답니다. 가난한 과객( 科客)은 등에 짚신켤레 여럿 메고 여강길을 걸었겠지요. 가는 길은 희망이었을 것이고 오는 길은 두 가지로 나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주는 낯선 이에게 희망의 길을 제공했습니다. 

 

여주에서는 이미 선사시대, 그러니까 한반도 청동기시대인 3000년전의 흔적도 발견되었고 고인돌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쌀을 비롯한 여러 곡식을 재배한 흔적을 갖추고 있습니다. 역시 쌀의 고장, 산물이 넉넉한 고장이었음을 수 천년 간 입증한 셈입니다.

 

천년사찰 신륵사,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달사지 유적, 점동의 원향사등은 현실과 전설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시간의 두께가 깊어지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묻어납니다. 지나가는 이야기도 많고, 이곳에서 생겨난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았단 이야기겠지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세종대왕과 관련이 깊습니다. 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의 고향(관향)이기에 여흥군에서 여흥부로 승격되고 다시 경기도에 편입되며 여흥도호부가 되었다가 세종의 천장 이후 여주목이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즉 여주는 세종의 오심과 함께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고 지금의 도(道)에 해당하는 목(牧)으로 그 관할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의 영릉은 지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 영릉(英陵)의 천능(遷陵;임금의 묘를 옮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세종사후 19년차, 즉 예종 1년에 여러 논의 끝에 광주(지금의 세곡동)에서 여주로 능을 옮기게 됩니다. 이후 햇수로 548년간 여주에 계신 것입니다. 현재의 영릉 자리는 한반도 최고의 명당이라고 자부한답니다.

 

세종의 천능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따라붙습니다. 그리고 능자리를 찾는 과정, 천능작업 인부의 규모, 현재 동네 이름이 된 연주리(신지리)와 연라리 등의 탄생, 고찰 신륵사가 세종의 원찰이 되는 이야기는 영릉의 천능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기에 자세한 말씀은 만나 뵙고 한잔 술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세종을 비롯해 여주와 인연이 깊은 역사인물이 많습니다. 효종대왕 영릉(寧陵)이 지척에 함께 있고,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의 고향이며, 구한말 비극의 주인공인 명성황후 생가도 있습니다. 효종을 모시며 북벌의 실행을 맡았던 이완장군, 거란의 대군을 맞아 세치 혀로 80만을 물러가게 한 외교관 서희장군과 당대의 문장가이자 몽골의 침입을 문장 하나로 격퇴한 이규보, 그리고 이색, 문익점, 송시열 등이 여주인물이거나 여주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많습니다. 다만 묻혀있을 뿐입니다. 생생한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교훈으로, 삶으로 건져 올리면 얼마나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질까요. 보석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공간 안에, 시간 안에 갇혀 있습니다. 

 

 

수도권의 변방 ‘소외공간’

 

저는 서울 강남의 잠실에 사는데 여주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얼마 전 새로 개통된 광주-원주 고속도로까지 더해져 그 시간거리가 더 짧아졌습니다. 서울시내 웬만한 곳은 대부분 여주에서 한 시간이 걸립니다. 여주 외곽을 넘나드는 도로는 사통팔달입니다. 사실 가까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멀게 느껴집니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여주를 가까운 이웃동네라고 생각하기보다 지나가는 길에 본 어느 곳, 어느 시골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여주에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핵심과제라고 보여집니다. 

 

차후에 평창까지 이어지는 전철도 여주까지 완공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철 역세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어느덧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합니다. 지역경제와 문화측면에서 공동화를 걱정합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매력 있는 인프라가 없다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여주를 ‘도농복합도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도시기능보다 농촌색이 더 강합니다. 경제규모와 일자리, 기업들의 구색이 그렇습니다. 1차산업위주의 경제가 주류를 이룹니다. 좀더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발전이 안된 지역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유는 한강변 수계보전구역입니다. 

 

수도권, 즉 경기도에서 보면 개발의 축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소리도 많이 합니다. 중국과의 교역과 미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지요.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여주가 수도권의 소외공간이 되었습니다. 1000만을 위해 희생 좀 해야 하는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폐허가 된 공장지대가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세계인을 끌어당기듯 여주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언을 듣고 싶은 대목은 이런 부분입니다. 

 

 

시간과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 ‘특산물과 문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오랜 사람들의 무늬가 있습니다. 역사인문자원이 풍부합니다. 시간과 자연과 사람의 씨줄날줄이 엮여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공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입니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잡풀 무성한 무덤 보듯 넘길만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수확하지 않은 농작물과 같습니다. 이제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산물도 특색 있습니다. 다만 상업화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여주에는 700여곳의 도자기관련 산업이 있습니다. 대부분 영세합니다. 그 가운데는 예술가도 많습니다. 대부분 제 값을 받지 못합니다. 지금 도자기는 필수 산업이 아닙니다. 문화산업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먹고 사는 게 급급합니다. 이것을 부가가치 높은 문화산업으로 세계를 상대로 상품을 넘어 작품을 팔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농작물은 오래 전부터 유명했었습니다. 여주 쌀은 다른 지역에 비해 단단합니다. 같은 무게인데 부피는 좀 적게 나갑니다. 밥맛은 너무 좋습니다. 왕실 진상미로 쓰이던 쌀입니다. 특이하고 우수한 토질에서 생산된 특별한 쌀인데 이것 역시 일반 쌀과 함께 도매금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몇몇 농가에서 브랜드화하고 있지만 쌀 산업의 특성상 전반적인 마케팅과 고급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고구마, 참외, 땅콩 등은 이름이 있습니다만 매니아층을 두텁게 만들지 못했고 이를 2-3차 가공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구조적인 시스템도 아직 갖춰지지 못했습니다. 원료는 좋은데 이를 이용한 가공상품으로의 진화는 아직 부족한 편입니다.

 

 

이야기의 중심 ‘사람들’

 

사실 도시 공동체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일, 생활이 여주공동체 그 자체일 테니까요. 숫자로 보면 현재 11만 1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 10여년동안 아주 적게나마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수도권 도농복합도시의 일반적 특징입니다.

 

65세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 현재 17.3%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의 5년은 20%를 넘길 것 같습니다. 고령화는 어느 지역이나 겪게 될 문제지만 여주는 비율상 조금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정도 규모의 인구라면 서울보다 넓은 면적의 여주에서 무언가 신나는 일을 한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리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기에, 2000만 수도권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의 생각과 비전을 한 방향으로 묶어내기만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생각과 관계는 그리 부드럽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원주민과 이주민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있고, 지역경제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소외의식도 느껴집니다. 출산과 아이와 어린이를 위한 편의시설도 아직 충분치 못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자주 어어 지는 좌절감이 한몫 하는 것도 같습니다. 자조 섞인 푸념도 종종 들립니다. 이렇다 할 기업도 있지만 다분히 폐쇄적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싹틀 토양이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섞이고 유연해지고 협력적이어야 하는 과제가 보입니다. 

 

지금도 시민화합과 시민의식의 향상을 위해 각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렇다 할 시민주도의 의제통합기능은 만들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여주를 위한 열망만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인프라보다 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분야 인재 키우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도 절실해 보입니다. 그 모든 부족함이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희망이 세종에게 있다는 말씀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왕의 이야기 ‘세종대왕 영릉’

 

세종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니 좀 어색합니다. 언젠가부터 제가 가장 경계하는 이야기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종의 한글창제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세종은 다들 잘 아시니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두 개가 한 개의 이야기입니다만 오늘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세종에게 매료된 부분은 한글창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로서의 성과이지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한 숱한 생동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수백 건에 이르는 백성사랑과 함께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글을 벗어나야 진짜 세종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창제는 훌륭한 그림의 화룡점정입니다. 사실은 용그림의 몸통과 배경을 주목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을 주목해야 진짜 세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셋째 아들의 비애와 무력감을 극복하기부터 아버지 태종의 그늘, 장인어른의 죽음과 임금의 장모가 노비로 전락하는 과정에서의 애닮음, 아버지와 자신의 신하이야기, 건강문제, 가족사의 아픔, 아버지로서의 슬픔과 후계문제에 이르기까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한글창제가 관객이 가장 자주 보는 익숙한 무대라면 무대 뒤의 연출실과 대기실의 이야기는 꾸며지지 않은 삶의 현장 그대로입니다. 그곳에서 빚어지는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또한 슬퍼집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듣고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너무 잘 알려진 세종대왕이라서 너무나 모르게 된 역설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익숙함의 역설을 경계하라고! 부부관계도, 친구관계도 이 역설의 틈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세종대왕이 그렇습니다. 너무 잘 알려져서 너무 모르는 분이 되었습니다. 

 

사실 세종은 좀더 깊이 들여다 볼 분입니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솟아나오는 화수분 같습니다. 그분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미래를 봅니다. 오늘의 고민이 당시의 고민이었고, 오늘의 아픔도, 슬픔도 모두 당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이야기에서 오늘과 내일의 여주를 가늠해 보려고 합니다. 비전도 그 안에서 찾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관념의 성군이 아니라 실제를 살아냈고 이룩했던 세종의 이야기, 바로 이곳으로부터 미래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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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13 [09:5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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