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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우리는 예술하는 할머니”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 어머니학교 <그것도 괜찮은 일이야>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7/06/15 [11:14]

매주 수요일 점동면 삼합2리 마을회관에는 이야기꽃,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예쁘게 단장을 한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유모차를 밀며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할머니들은 모여 앉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우느라 자기 자신은 돌아볼 새 없이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이 이날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가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된다. 

 

여주지역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전문가들의 그룹인 인문공동체 ‘책배여강’이 매주 수요일마다 삼합리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다. ‘책배여강’은 경기문화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015년부터 3년 째 어르신들과 책을 읽고 삶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예술학교를 진행해오고 있다. 2015년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2016년엔 ‘내 얘길 누가 들어줘’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17년에는 ‘그것도 괜찮은 일이야’라는 제목으로 4월부터 11월까지 40회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그것도 괜찮은 일이야'를 기획한 '책배여강'의 박혜진 씨.     © 최진영

 

▲ 박혜진 씨가 읽어주는 그림책 '책보'를 집중해서 듣는 삼합리 어르신들.     © 최진영

 

기자가 찾아간 지난 7일에는 ‘책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읽고 책가방을 손수 꾸미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도 2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였다. 평균 연령은 85세. 다리가 아파서 바닥에 앉지 못하는 분, 손이 굽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분도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즐거워했다. 책보를 허리춤에 메고 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하얀 면가방에 색색의 염색물감으로 “그것도 괜찮은 일이야”라는 글자를 찍어내는 작업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는 88세 유인복 할머니는 “유치원생만도 못한 우리 때문에 답답하겠지만 선생님들이 책도 재밌게 읽어주고 해서 좋다”고 말했다. 사륜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온 최고 연장자 93세 황창남 할머니는 그림그리기와 만들기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하신다. 강사에 따르면 황 할머니는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고 한다. 황 할머니는 집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한다. 이 날의 유일한 청일점 84세 박호철 할아버지는 고추농사를 짓다가 짬을 내서 온다며 “같이 얘기하고 웃고 떠들면 삶에 활기가 돌아서 좋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의 부인인 이순우 할머니는 매주 신장투석을 받는 환자인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88세 임규분 할머니는 시를 잘 쓰신다고 한다. 집에서 혼자 써온 시를 강사에게 수줍게 내민 적도 있었다고. 

 

▲ 삼합리 어르신들이 염색물감을 두드려 직접 글자를 새긴 가방.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뿌듯함을 안겨준다     © 최진영

 

▲ 삼합리 어르신들이 염색물감을 두드려 직접 글자를 새긴 가방.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뿌듯함을 안겨준다     © 최진영


삼합리 어머니학교에 참가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이런 소질이 있는지 평생 알지 못하고 지내왔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안에 갇혀있던 예술성과 소질을 발견해 끄집어내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짜릿한 일이다. 삼합리어머니학교 2년 째를 접어들면서 할머니들은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고 한다. 그림책 읽기도 그림 그리기도 “애들이나 하는 걸 왜 하냐”며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나이 팔십 넘어 처음 하는 것들이 익숙할 리 없다. 할머니들은 낯선 강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놓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마을의 보건지소와 협력해 어르신들에게 다가갔다. 장안보건진료소 김영신 소장이 함께 참석해 어르신들에게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리고 강사진과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책배여강의 박혜진 씨는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깊어지니 살아왔던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며 “처음엔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들어왔지만 지금은 어르신들의 의견을 듣고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뿌듯해 했다. 박 씨는 “우리 프로그램의 차별성은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운다는 것”이라며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삼합리의 수요일이 모이고 모여 ‘시집’이 되고 ‘전시회’가 되었다. 지난 2015년, 2016년 이태에 걸쳐 할머니들의 작품을 전시회로 모아냈다.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을 모아 작은 책자도 만들었다. 이 성과들은 어르신들과 강사들이 서로에게 배운 것들을 기록한 성장일기와도 같다. 

 

노년의 삶 응원하는 문화예술활동 3년 째

자신과는 먼 일이던 예술이 삶에 스며든 순간

80세 인생이 새롭게 꽃펴났다

 

농촌의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지는 노인대상 프로그램은 주로 노래교실, 문해교실, 체조교실, 치매 예방 교실 등이다. 프로그램이 없는 날 어르신들은 주로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특별히 예술교육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난다. 노인이 대부분인 농촌 마을엔 이렇다 할 문화가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하는데 삼합리어머니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은 큰 의미가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1년마다 공모를 한다. 박 씨는 내년에도 이 사업에 응모할 생각이 있지만 만약 선정되지 않더라도 큰 걱정은 없다고 한다. 이미 삼합리에는 어르신들 스스로 문화예술활동을 유지해나갈 역량이 쌓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해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써내는 8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삼합리 마을회관에는 앞으로도 웃음 소리,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책배여강’은 여주지역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전문가 그룹으로 2012년 7명의 인문사회과학·예술 전공자들이 모여 ‘비영리단체’로 출발했다. 배우고 나누는 인문공동체를 지향하며 그림책·철학·예술·인문학 강좌를 해 오고 있다. 2015년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주제로 어르신 대상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시작했고 2016, 2017년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참여단체로 선정되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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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5 [11:1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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