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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휼 ①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7/08/23 [15:56]
세종이 사람들을 경상·충청·강원·함길도에 나눠 보내어, 수령들의 구휼하는 일에 관한 성실성과 굶어 죽은 사람의 유무를 살펴보게 하였다. 강원도 백성들의 상태를 조사하러 나갔던 김종서로 부터 장계가 올라왔다. 시급히 조세 면제 조치를 취해 기민(飢民)을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금부제조 변계량이 반대하였다. 그러자 세종이 답하였다. 임금으로 있으면서 백성이 주리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할 일이다. 하물며 지금 묵은 곡식이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니,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준다 해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되거늘, 도리어 주린 백성에게 조세를 부담시켜서 되겠는가. 더욱이 감찰을 보내어 백성의 굶주리는 상황을 살펴보게 하고서 조세조차 면제를 안 해준다면, 백성을 위하여 혜택을 줄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 세종 1년 1월 6일

갑작스럽게 기근이 들면 농사를 크게 짓거나 적게 짓거나를 막론하고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구휼함에 있어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지 말라고 세종이 배려하였다. 

경기도에 하명하여, 굶주리는 백성에게는 농사 짓는 것이 있고 없고를 묻지 말고 아울러 다 구제하라고 하였다. - 세종 1년 1월 27일


정사를 논의하던 중에 제주도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말이 나왔다. 예조판서 허조는 난민을 구제하는 일은 벌써 지난해 10월에 명령이 내렸는데, 아직도 거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빨리 미곡을 수송하여 나누어 주게 해야 마땅하다고 하였고, 호조판서 최이는 먼저 미곡 3백 가마를 보내고 굶주리는 상황을 자세히 살피어 계속 실어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같은 사안을 놓고 신하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자 세종이 결론을 내렸다. 

“빨리 사람을 시켜 운반해서 군색한 백성에 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 세종 1년 1월 30일

세종은 적은 수의 백성들이 굶주림에 빠졌다는 소식에도 늘 전력을 다하여 구제하였다.

“듣건대 무릉도(지금의 울릉도)에서 나온 17명의 사람들이 지금 평구역에 당도하여 양식이 떨어졌는데, 구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경기도 큰길가가 이와 같은데, 하물며 먼 지방이야 어떻겠느냐. 이로 미루어 각군 백성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굶주리는 자가 있을 것이니, 호조로 하여금 각도에 공문을 내어 세밀히 검찰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굶주리고 곤궁한 일이 없게 하여 나의 지극한 향념에 부응케 하라.” 고 하였다. - 세종 1년 4월 1일

이번에는 구호미를 나누어 주는 시기를 놓고 세종과 신하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계사(啓事)하는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대소맥(大小麥)이 익으면, 백성의 먹을 것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소맥이 익으면, 백성이 사경(死境)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장차 먹다 떨어질 경우에는 반드시 구호미를 나눠 주어야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대소맥이 떨어지게 되면, 이른 곡식이 계속해서 익을 것이니, 구호미를 나누어 주지 아니하여도 반드시 굶주리지 않을 것입니다.”하니, 임금이“나는 대소맥이 떨어져 갈 무렵에 다시 구제해 주어야 될 줄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 세종 1년 4월 13일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는 신하들은 춘궁기라 하더라도 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난해 수확한 가을 곡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백성들의 절박한 상황에 둔감했을 것이다. 이를 익히 알고 백성들을 배려하는 스물 한 살 세종의 마음씨가 놀랍다.

이 무렵 충청도에서 기민구제에 대한 건의가 올라왔다. 밀과 보리가 익으면 기민구제를 일시 정지하자는 것이었다.

충청도 감사가 계하기를, “양맥(兩麥)이 익은 뒤에 기민을 구제하는 것을 정지하고, 보리를 다 먹은 뒤에 또 다시 구제함을 행하소서.”하니, 임금이 명하여 수령으로 하여금 친히 살펴서 실지로 굶고 있는 자가 있거든 구제하라 하였다. - 세종 1년 6월 11일

시간이 지나도 신하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백성들의 먹거리와 세금을 관장하는 호조에서 기민구제를 중지하자고 아뢰었다.

호조판서 이지강이 계하기를, “지금 밀과 보리가 익기 시작하여, 백성의 식량이 대어 먹을 수 있으니, 기민을 진제하는 것을 중지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밀과 보리가 익었다 할지라도, 나는 굶주리는 백성이 있을까 염려되니, 수령들로 하여금 직접 백성의 살림을 조사하게 하여, 만일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구제하게 하라.”하였다. - 세종 3년 4월27일

최고위 관료인 영의정의 생각도 일반관료와 다르지 않았다.

영의정 유정현이 계하기를 “금년에 비록 기근이 있다 할지라도, 내년 봄이 더욱 심할 것이니, 지금은 법령을 엄하게 하여 수령으로 하여금 구휼하게 하고, 내년 봄에 경차관(敬差官)을 보내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현의 말은 내년을 걱정한 것이나, 이제 기근이 이와 같은데, 어찌 차마 보고만 있겠는가. 내가 직접 여러 도에 순행하여 백성들의 굶는 것을 살필 수 없으므로, 관리를 보내어 구휼하게 한 것이다.”하였다. - 세종 4년 7월 10일

호조가 아뢰었다.

호조에서 계하기를 “경외(京外)의 기민(飢民)을 6월 25일까지 한하여 진제(賑濟)할 것입니다.”하니, 7월 10일까지 한하여 진제하라고 명하였다. - 세종 5년 6월 22일

호조를 비롯한 신하들의 무심한 탁상행정과 의례적인 업무집행 속에서 굶주린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행정의 효과가 현장의 백성들에게 미치기 까지 행정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관리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백성의 구휼이라는 동일한 사안을 두고 세종과 신하들 간의 온도차가 이처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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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23 [15:5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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