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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증산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7/09/14 [10:46]
세종은 농업생산량의 증대만이 굶주림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적기 파종, 안정적인 물 공급, 지속적인 개간, 우수품종의 보급, 고급 농사기술의 전파 등에 세종이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력이 생활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백성들은 절기에 맞추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의 지시가 구체적이다.
 
“각도에 공문을 내어 메밀을 경작하게 하되, 농상집요(農桑輯要)·사시찬요(四時纂要) 및 본국의 경험방(經驗方)으로 시기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시키라.” - 세종 5년 6월 1일
 
“지금이 파종할 때인데 어리석은 백성들이 비 온 것이 흡족하지 않다 하여, 절기를 따라 갈고 심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간혹 있다 하니, 각도로 하여금 권하고 독려하여 때를 맞추어 씨를 뿌리게 하라.” - 세종 7년 4월 13일
 
“금년의 절기는 너무 가무니, 농사를 더 늦추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도의 감사로 하여금 계문(啓聞)하지 말고 시기에 맞춰 적당히 잡곡 종자를 나누어 주게 하여 뿌리게 하라.” - 세종 8년 4월 5일
 “금년은 절후가 이른데다가 농사철에 비가 오지 않으니, 무지한 인민들이 비 오기를 기다려 씨를 뿌리려 한다든가, 혹은 시기를 놓치는 일이 있을까 염려되니, 각 고을의 관원으로 하여금 씨 뿌리는 것을 재촉하게 하라.” - 세종 8년 4월 7일
 
경작지를 넓히는 일은 수확량 증대와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대호군 장합(張合)을 평안도에 보내어, 연해(沿海)의 경작할 만한 곳을 보아 그 비옥하고 척박한 것을 살펴서 아뢰라고 하였다. - 세종 4년 윤12월 2일
 
“경기도의 연천·안협·삭녕·임강과 강원도의 김화·금성·회양과 황해도의 우봉 강무장(講武場)은 이제 모두 혁파하였으니, 백성이 개간하여 농사짓는 것을 허락하라.” - 세종 6년 9월 19일
 
“일찍이 강화의 목장에 살던 백성이 지금 각도에 옮겨 거주하여, 새 땅을 받아서 개간한 사람의 전세는 원전(元典)에 의거하여, 첫 해에는 전적으로 면제하고, 2년에는 반을 징수하고, 3년 이후에는 전액을 징수하되, 2년까지를 한하여 역을 면제하고, 만약 국둔전(國屯田)과 각 사사전(寺社田)을 받은 사람에게는 1년에는 반을 징수하고, 2년까지를 한하여 역을 면제해 주라.” - 세종 9년 2월 28일
 
안정적인 물 공급은 빼놓을 수 없는 증산의 요소다. 세종은 수차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제작에 쓰일 적절한 목재가 없다는 점과 제방중심의 수리관리체계로 인하여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다. 백성들이 가난 때문에 수차를 만들 만한 여력이 없는 점도 수차의 보급을 어렵게 하였다. 그러나 한재를 극복하기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전개되었다.
 
“본국 인민들이 다만 제언(堤堰)의 몽리(蒙利)만을 알고 수차로 관개하는 유익한 방법을 몰라서, 한재만 당하면 농사에 실패하니 딱하고 민망하다. 각도의 감사는 수차를 설치할 만한 장소를 조사하여 지금 반포한 수차의 모양에 따라 제조하게 하고, 감사가 수시로 이를 고찰하여 매양 전최(殿最)를 당할 때마다 그의 근면과 태만도 아울러 기록하여 출척(黜陟)의 증빙으로 삼도록 하라.” - 세종 12년 9월 27일
 
우수품종의 보급은 단위생산량을 높이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제 한 해에 두 번 익는 기장씨를 보내니 격련수예법(檄連樹藝法)에 의하여 기름진 땅에 심어서 시험하라. 대개 일찍 자라는 물건은 반드시 무성하지 아니하고, 또 수확이 늦곡만 못하며 분전(糞田)하는 힘이 허비되므로, 비록 종자가 있어도 백성들이 즐겨 심지 아니한다. 그러나 수확은 비록 적을지라도 한 해에 두 번 익으니, 또한 첫여름 양식이 곤란할 때에 매우 긴요하니 수령이 친히 감독해 갈아 심고, 또 그 나서 자라고 패서 익는 상황과 수확한 수량을 자세히 갖추어 계달하라.” - 세종 19년 5월 22일
 
“(중략) 바람에도 견디는 볍씨를 바꾸어서 우선 관가에서 심어서 시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가을 거둠을 기다려서 수량을 자세히 아뢰어라.” - 세종 19년 11월 29일
 
무엇보다도 풍농을 보장하는 농사기술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중략) 우리나라의 농민들은 예로부터 가을갈이의 방법을 알지 못하고 (중략) 시속에서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써서 하지 아니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농사가 잘되지 못하여 수확이 적으니 진실로 한탄할 만하다. 이제부터는 《농서》의 말에 의하여 민간에 통유(通諭)하여 가을갈이를 일으켜 행하여 그 이익을 시험하게 하라.”  - 세종 19년 6월 13일
 
“먹는 것은 백성에게 으뜸이 되고 농사는 정치의 근본인 까닭으로, 수령들의 백성에게 가까이 하는 직책은 권농보다 중한 것이 없다.(중략) 그러므로 지난 기유년에 여러 가지 책을 수집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만들어 각도에 반포하여,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역시 명백하게 쉽게 알도록 하였다. (중략)즉시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반포하여, 농민을 깨우치고 가르쳐 책에 의거해 시험해 보여서 풍속을 이루도록 하라.” - 세종 19년 7월 23일
 
농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더 좋은 농사기법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심초사하였던 세종대왕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지존의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은 감동을 넘어 감격스러운 일이다.
 
내가 즉위한 이후로 조종께서 남긴 음덕을 입어 백성들이 편안한 데 이르기를 기약하였더니, 이제 농사달을 당하여 가물고 비오지 아니하매 농사가 장차 잘되지 못하겠으니, 나의 덕이 없는 소치이다. 또 천심을 돌이킬 힘이 없으매 재(災)를 막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내가 병진년에 밭 1무(畝)를 궁성 안에서 갈아 친히 갈고 김매는 것을 살폈더니, 이 해에 한재(旱災)가 참혹하였으나 그 수확이 매우 많았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때에 맞추어 갈고 김맨 까닭이다. - 세종 21년 6월 24일  
 
여주대 박현모교수는 고려말부터 세종 중반까지 세금을 내는 경작지의 면적이 50만결(結)이었으나 1432년(세종 14)에는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하고도 118만 6천결로 확대되어 2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또 토지 1결당 평균 300두(斗)였던 생산량은 세종 26년에 1200두로 4배 이상 늘어나 먹고사는 문제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고 이 시대를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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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4 [10:4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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