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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법(曆法)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7/09/28 [14:02]
역법이란 천체의 주기적 운동을 살피고 예측하여 인간의 생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시간의 단위 등을 만드는 법칙이고, 이를 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달력이다.

왕조시대에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다. 그러므로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는 관상(觀象)과 절기를 알려주는 수시(授時)는 임금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성산부원군 이직이 역법의 교정(校正)을 건의하자 세종의 몰입이 시작되었다.
 
서운관(書雲觀)의 추보(推步)하는 사람이 산법(算法)에 어두우므로, 직제학 정흠지(鄭欽之)로 제거(提擧)를 삼고, 정랑 김구려(金久閭)로 별좌(別坐)를 삼아 그 일을 맡게 하였다. - 세종 4년 윤12월 16일
 
문신에게 명하여 당(唐)의 선명력(宣明曆)과 원(元)의 수시력(授時曆)과 보교회보중성력요(步交會步中星曆要) 등의 서적의 차이점을 교정하여, 서운관에 내리어 간수하게 하였다. - 세종 5년 2월 10일
 
그로부터 10년 만에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천문을 추산(推算)하는 일이란 전심전력해야만 그 묘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식·월식과 성신(星辰)의 변(變), 그 운행의 도수(度數)가 본시 약간의 차착(差錯)이 있는 것인데, 앞서 다만 선명력법(宣明曆法)만을 썼기 때문에 착오가 꽤 많았던 것을, 정초(鄭招)가 수시력법(授時曆法)을 연구하여 밝혀 낸 뒤로는 책력 만드는 법이 좀 바로잡혔다. 그러나 이번 일식의 휴복시각(虧復時刻)이 모두 차이가 있었으니 이는 정밀하게 살피지 못한 까닭이다. 삼대(三代)와 같은 성대(盛代)의 역법도 착오가 없지 않았으니, 중국과 같이 천문을 자세히 관찰하여 수시로 이를 바로잡아도 오히려 또 이와 같은 일이 있었거늘, 하물며 우리나라이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옛날에는 책력을 만들되 착오가 있으면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 법이 있었다. 내가 일식·월식 때마다 그 시각과 휴복의 분수(分數)를 모두 기록하지 않아서 뒤에 상고할 길이 없으니, 이제부터 일식·월식의 시각과 분수가 비록 추보한 숫자와 맞지 않더라도 서운관으로 하여금 모두 기록하여 바치게 하여 뒷날 고찰에 대비토록 하라.” 하였다. - 세종 12년 8월 3일
 
역법은 천문학과 수학 기술의 정수다. 역법의 이해를 위해 직접 산수공부에 나섰다.

임금이 계몽산(啓蒙算)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하였다. - 세종 12년 10월 23일
 
천문에도 조예를 이루어 함예성(含譽星)과 혜성을 구별할 수 있었다.
 
임금이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요즈음 중국에 함예성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천문을 관찰하는 자들이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혹 구름이 가리고 산이 높아서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옛 서적을 상고해 보니, 함예성이란 혜성(彗星)과 유사하나 꼬리가 짧다고 하였는데, 이번 중국에서 본 별이 꼬리가 짧다면 정말 함예성인 것이다.” 하였다. - 세종 13년 1월 30일
 
모르는 부분을 배워서 익히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산수에 밝아서 방원법(方圓法)을 상세하게 아는 자가 드물 것이니, 문자를 해득하고 한음(漢音)에 통한 자를 중국으로 보내 산법을 습득케 하려 하는데 어떤가.” - 세종 13년 3월 2일
 
지금이 아니더라도 뒤에 여건이 성숙되면 해결되는 일이 있음도 세종은 꿰뚫고 있었다.
 
“정인지를 보내어 정초와 같이 교정하게 하라. 그가 천문은 비록 자세히 알지 못할지라도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으로써 초고(草稿)를 세워 놓으면, 뒷사람이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세종 13년 7월 11일
 
공적이 있는 신하들을 격려하면서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일력을 계산하는 법은 예로부터 이를 신중히 여기지 않는 제왕이 없었다. 이 앞서 우리나라가 추보하는 법에 정밀하지 못하더니, 역법을 교정한 이후로는 일식·월식과 절기의 일정함이 중국에서 반포한 일력과 비교할 때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매, 내 매우 기뻐하였노라. 이제 만일 교정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20년 동안 강구한 공적이 반도(半途)에 폐지하게 되므로, 다시 정력을 더하여 책을 이루어 후세로 하여금 오늘날 조선이 전에 없었던 일을 건립하였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니, 그 역법을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역술에 정밀한 자는 자급을 올려 관직을 주어 권면하게 하라.” - 세종 14년 10월 30일
 
이런 노력의 결과로 세종시대의 빛나는 업적에 하나인 칠정산(七政算) 내외편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하늘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만의 달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칠정은 칠요(七曜)라고도 하는데 해, 달,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을 일컫는다.
 
아라비아의 회회력에 기초한 칠정산 외편은 대단한 정확도를 자랑한다.
 
이순지가 쓴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의 발문 속에 칠정산내외편이 언급되어있다.
 
“제왕의 정치는 역법과 천문으로 때를 맞추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우리나라 일관(日官)들이 그 방법에 소홀하게 된 지가 오래인지라, 1433년(세종15) 가을에 우리 전하께서 거룩하신 생각으로 모든 의상(儀象)과 구루(晷漏)의 기계며, 천문과 역법의 책을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모두 극히 정묘하고 치밀하시었다. (중략) 또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하게 하셨다.” - 세종 27년 3월 30일
 
칠정산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과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한양의 위도에 맞게 수정, 보완한 것으로 1년을 365.2425일, 1달을 29.530593일로 정하고 있는데 이 수치들은 현재의 값과 유효 숫자 여섯 자리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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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28 [14:0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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