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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02/01 [12:47]
힘없는 백성에 대한 배려는 세종의 전매특허다.
 
임금이 중앙과 지방의 신료에게 유시(諭示)하기를 “환과고독(鰥寡孤獨)과 피융(疲癃)·잔질(殘疾)은 왕자(王者)의 정치에서 마땅히 불쌍히 여겨야 될 바이니, 안으로는 한성부의 5부와 밖으로는 감사와 수령이 상세히 심문하여, 환상(還上)과 진제를 우선 나누어 주어 그들의 처소를 잃지 말게 할 것이다.” 하였다. - 세종 즉위년 11월 3일 
 
금교역 서산에서 사냥하는 것을 보고 수레가 개성에 이르렀을 때 맹인들을 만났다.
 
맹인(盲人) 1백 14명이 임금의 수레 앞에서 궁핍함을 고하므로, 유후사에 명하여 쌀 40석을 주게 하였다. - 세종 1년 5월 3일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장애인들이 빠지지 않았다.
 
묵은 쌀 1천 석을 풀어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불구자와 극빈자가 사가게 하였다 - 세종 1년 8월 1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흉년은 재앙이다. 그 중에서도 장애인은 그 정도가 심하게 마련이다.
 
교지를 내리기를 “근년 이래로 수재와 한재가 잇따라서 연년이 흉년이 들었고, 지난해가 더욱 심하여 민생이 불쌍하게 되었으니, 각도 감사와 수령들은 나의 뜻을 잘 받들어서 구제할 물품을 가지고 불구자나 병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제해 주되, 장차 조관(朝官)을 보내어 순행하여 물어 볼 것이니, 만약에 여염 가운데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었다면 중죄로 처단할 것이다.” 하였다. - 세종 3년 2월 5일
 
오랜 병이 있거나 그로인해 장애가 생긴 관비의 신역(身役)을 없애도록 명하였다.
 
여러 관사(官司) 노비의 독질(篤疾)과, 폐질(廢疾)이 있는 사람의 공(貢)을 없애도록 명하였으니, 호조의 계청에 의한 것이었다. - 세종 3년 5월 20일
 
혼자 사는 맹인 여자들이 저화(楮貨)로 환상한 것을 갚기를 청하였다.

서울 안의 맹인(盲人)으로 혼자 사는 여자 29인이 북을 치고 호소하기를 “일찍이 환곡을 받아 먹었으나, 가난한 탓으로 수를 채워 바치지 못하겠사오니, 저화로써 대신 바치기를 원합니다.” 하므로, 호조에 명하여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라고 하였다. - 세종 4년 11월 28일
 
장애인들의 소소한 일상의 어려움도 놓치지 않았다.
 
맹인(盲人) 박연(朴連) 등 26인이 상언(上言)하기를 “병인(病人)들이 각기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으로 직업을 삼아 생계를 이어 왔었는데, 근래 국상(國喪)으로 인하여 음악을 정지하였으니,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니, 각기 쌀 한 섬씩을 주라고 명하였다 - 세종 6년 7월 22일
 
장애인을 위한 법령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챙겼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노인과 폐질자(廢疾者)를 인애(仁愛)로써 기르라는 것은 이미 세운 법령이 있는데도 중외의 관리들이 이를 소홀히 하여 거행하지 않으니, 그 양로조건(養老條件)을 의정부와 제조(諸曹)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세종 8년 7월 18일
 
통역관 김척(金陟)이 두 가지 죄에 연루되었다. 밀무역과 국사 누설죄였다. 사헌부는 김척의 죄가 참형에 해당된다고 아뢰었다. 형조에서도 같은 의견을 올렸다. 세종은 법대로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 형조에서 복계(覆啓)하였다. 복계는 사죄(死罪)에 해당하는 죄인을 신중히 처결하기 위하여 죄인의 옥안(獄案)을 다시 심사하여 임금에게 아뢰던 일로 1차 심사를 초복(初覆), 2차 심사를 재복(再覆), 3차 심사를 삼복(三覆)이라 하였다. 세종이 정부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다. 
 
황희·허조 등이 아뢰기를 “김척은 어사(御史)에 대한 한결 같은 모양의 말과 진주(眞珠)를 숨겨 가지고 간 사실은 비록 용서할 만하나, 그가 요동의 반송사인(伴送舍人) 유준(兪准)과 교통한 정적은 뚜렷이 나타났으니 법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맹사성은 아뢰기를 “어사에 대한 한결 같은 모양의 말은 비록 누설이 되었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으나, 진주를 숨겨 가지고 간 죄는 죽는 데까지 이르지 않지마는, 다만 유준과 교통한 것은 그 죄가 매우 중하오니, 잠정적으로 관대한 형벌에 따라 목숨을 살려 주는 제왕의 덕을 보이소서.” 하니, 황희 등의 의논에 따랐다. - 세종 13년 10월 1일
 
이때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김척의 어미가 임금에게 선처를 호소하였다.
 
형조에서 김척을 장차 목 베려 하니, 그 어미가 말씀을 올리기를 “늙은 계집이 나이 80이 넘었는데, 자식이 셋이 있으나, 하나는 폐질(廢疾)이고, 하나는 두 눈이 멀었으므로, 다만 척에게 의지하여 살았는데, 지금 만약 형벌을 받는다면 늙은 계집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참인지 거짓인지 사실을 조사하는 동안에는 아직 형벌을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 세종 13년 10월 13일
 
세종의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대목이다. 실록에 나와 있는 결론은 이러했다.
 
김척(金陟)을 고향 가까운 땅에 옮겨 두기를 명했으니, 그 어머니가 상언(上言)하였기 때문이었다. - 세종 14년 7월 12일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법에 따라 원칙대로 시행할 것을 지시하였다.
 
호조에 전지하기를 “속전(續典)에 각도의 감사가 부역(賦役)을 나누어 배정(配定)할 때에는, 토지(土地)의 넓고 좁음과 인구의 많고 적은 것에 따라 등차(等差)있게 하고, 그 중에 환과고독(鰥寡孤獨)과 피륭잔질(疲癃殘疾) 자로서 집에 다른 장정에 없는 자에게는 전면(全免)할 것이며, 또 수령이 모든 부역을 시킬 때에는 인구의 많고 적음과 경지 면적의 실지 수량을 참작하여 정하라는 것은 이미 성문(成文)의 법이 있는데, 각도의 감사와 수령들이 기성(旣成)의 법을 준수하지 않고, 부역을 배정하는 것이 고르지 못하여 폐해가 잔약한 백성에게 미치는 일이 혹시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니 지금부터 각도에 깨우쳐 타일러서 일체 육전(六典)의 규정에 따라 시행하게 하여, 잔약한 백성들로 하여금 제 살 곳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 세종 26년 윤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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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01 [12:4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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