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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 산다고 하면 좋은 데 산다고 부러워해요”
[인터뷰] ‘b단헤어’ 강경미 원장·한승모 부원장 부부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03/14 [15:25]
여주시 홍문동에서 미용실 ‘b단헤어’를 운영하는 강경미(39·원장), 한승모(42·부원장) 부부를 만나보았다. 이들 부부는 친구들에게 여주에 산다고 하면 “여주? 좋은 데 사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여주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 미용실 ‘b단헤어’ 강경미 원장·한승모 부원장 부부     © 세종신문


미용실 ‘b단헤어’를 운영한지는 얼마나 되었나?

강경미 원장(이하 원장) 2013년 5월에 지금의 자리에서 미용실을 시작했으니 올해 5월이면 만 5년이 된다. 미용 일을 한 지 20년 정도 된다. 여주에 오기 전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미용실을 하였다.
2013년 여주로 이사 와 남편도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같이 미용실을 운영하였다. 남편이 직장생활 할 때는 그냥 부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편이랑 같이 미용실을 하게 되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뭐랄까. 굉장히 절박하고 간절한 뭔가가 있었다. 


여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장 2009년에 결혼을 하고 나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남편은 직장을 다녔다. 2010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어 남편이 퇴근하고 육아를 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신 여주로 이사를 결심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천에 살고 계셨는데 약 15년 전에 여주로 오셨다. 

한승모 부원장(이하 부원장) 나도 여주 처갓집에 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아내가 여주로 이사를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다. 지금도 장인·장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정말 좋다. 우리 부부가 같이 미용실을 운영하다 보니 장인·장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고 우리는 생활비를 보탠다. 장인·장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지금은 꽤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b단헤어’를 처음 운영하실 때 어려움은 없었나?

원장 여주에 이사를 와서 처음 미용실을 시작할 때 아는 사람이 부모님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완전 맨땅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뭔가 색다른 미용실을 운영해야 했다. 초기에 투자를 많이 했다. 인테리어도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하였고 남들이 하지 않는 우리만의 색다른 미용 서비스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 인테리어를 보고 여주에서는 비싸 보이는 미용실이 잘 안된다고 여러 사람이 걱정을 하였다. 

부원장 내가 처음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일을 시작할 때는 기술이 부족해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 때는 원장님(아내)과 많이 다퉜다. 그러나 이후에 내 단골이 차츰 늘어나면서 다툼이 줄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보며 한참을 웃는다) 손님이 없을 때는 다투다가도 손님이 오면 시치미를 뚝 떼고 밝은 표정으로 손님 머리를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도 엄청난 감정 노동이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둘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고 퇴근할 때쯤이면 “집에 가서 소주나 한잔 하자” 하면서 풀었다. 


▲ 미용실 ‘b단헤어’ 강경미 원장     © 세종신문


‘b단헤어’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원장 여주에서 미용실을 시작할 때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미용실의 미용컨셉으로 ‘모발과 두피 케어’를 선택했다. 여주 사람들에게 모발과 두피 케어에 대해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초기 1~2년 동안에는 수 천 만원의 비용을 투자해가며 모발과 두피 케어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제는 그것을 이해한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서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척’하지 말고 솔직하고 진심을 다해 손님을 대하자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손님들의 머리를 하다 보면 때로는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때는 손님도 그걸 느끼는데 괜히 미용사가 “정말 잘 됐죠?”하고 ‘척’을 하면 그 손님은 다음에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잘못 되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해주는 것이 옳다. 그러다 보니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집중해서 성의 있게 머리를 하게 되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

부원장 미용이라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다. 작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다. 정말 덥고 습한 날씨의 연속이었는데 미용실 에어컨이 고장이 났다. 그래서 에어컨을 수리할 때까지 예약손님을 다 취소하였는데 이천 사시는 고객 한 분은 그날 꼭 펌을 해야겠다고 에어컨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며 찾아왔다. 내가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손님과 원장님이 그 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열펌’을 하고 있었다. 

원장 그 손님이 지금도 우리 미용실 단골이신데 가끔 그 때 이야기를 하신다. 또 하나는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하는 학생인데 지금도 방학 때면 우리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온다. 한번은 일본여행을 마치고 우리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 들렀다가 머리를 하고 뉴질랜드로 출국한 적도 있다. 


외지에서도 머리를 하러오는 손님이 많나?

원장 좀 있다. 이천에서도 오고 청주, 보은, 서산, 대구에서도 우리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오는 단골이 있다. 


여주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나?

원장 제일 절실한 것은 주차문제다. 우리 미용실이 여흥동주민센터 인근에 있는데 오는 손님들이 모두 하는 말이 주차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여주는 차가 없으면 어디 제대로 다니기도 어려워 승용차를 많이들 이용하는데 주차문제가 정말 큰 애로사항이다. 실정이 이런데 지난 1월 1일부터 우리 미용실 앞 도로 주차단속시간이 오후 6시에서 8시로 연장되었다. 

부원장 시청에 민원을 여러 번 넣어 봤지만 아직도 대책이 없다. 차도와 인도에 절반씩 걸쳐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허용하든지 아니면 편도에 주차구간을 마련하면 될 것 같은데. 

원장 또 하나는 여주가 ‘여주스타일’이라는 오랜 습성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그게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폐쇄적일 때가 있다. 타지 출신들이 끼어 들 틈이 없다. 


▲ 미용실 ‘b단헤어’한승모 부원장     © 세종신문


돈이 도는 여주라는 말이 있는데 여주에서 장사를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원장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여주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다. 뭔가 새로운 것이 생겨나면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여주 사람들은 여주만의 세계에 안주해 있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해외나 대도시에서 경험한 새로운 문화와 아이템을 과감하게 여주에서 펼치면 여주 사람들은 엄청난 속도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여주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주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여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주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는가를 잘 캐치해야 한다. 


평소에 세종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원장 평소에 세종대왕에 대해 뭐 특별히 어떻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이 다다. 그런데 여주에 살다보니 이래저래 세종대왕에 대해 많이 듣고 접하게 된다. 작년에 TV에 세종대왕릉이 나왔길래 아이 교육을 생각해서 세종대왕릉에 다녀왔다. 세종대왕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정말로 사랑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 아이도 박물관에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정말 유심히 봤다. 난 여자라서 그런지 세종대왕께서 600년 전에 하신 ‘육아휴직’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부원장 우리가 신륵사에 자주 놀러 가는데 신륵사나 시설관리공단과 같은 화장실에 가보면 곳곳에 세종대왕 어록이 걸려 있다. 여주에서는 세종을 알리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종대왕께서 가뭄이 들자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올 때까지 뜰에 서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임금이 어디 그러기가 쉽나?


‘세종인문도시 명품여주’에 대해 들어 보았나?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원장 솔직히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들었을 수도 있는데 관심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여주는 정말 축제를 많이 한다. 여주같이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 축제를 많이 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축제를 통해 여주를 알리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여주는 강이 있고 공기가 좋고 유원지도 많아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가 정말 좋다. 특히 나는 여주의 강변이 너무 좋다. 우리집도 여주의 강변인데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 강가에서 자전거를 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부원장 솔직히 내가 여주에 이사 오기 전에는 여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여주에 살면서 여주 사람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어디를 가든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럴 때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다. 가끔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여주에 산다고 하면 친구들이 “여주? 좋은 데 사네~”하고 부러워한다. 지금은 여주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게 ‘세종인문도시 명품여주’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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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14 [15:25]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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