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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10- 상왕 태종, 수습임금 세종을 위하여 손에 피를 묻히다.(5)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08/01 [16:53]

경남 사천에서 추운날씨에 죄수를 운송하는 함거를 타고 득달같이 온 박습을 국문하기 시작했다. 소나 말이 끄는 흔들리는 수레를 매우 덜컹거리를 길을 몇날 몇일 달려왔을 것이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초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중대한 혐의가 있는 자에게 인권이란것이 있을리 없다. 박습은 병조판서,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이다.

 

 

 

상왕이 명하기를

 

"전위(傳位)하는 교서(敎書)에,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은 내가 친히 청단(聽斷)한다. 또 병조로 하여금 항상 전문(殿門) 안에 있게 하라하였으니, 너희들이 군무(軍務)로써 의견을 아뢰지 않았으니, 반드시 다른 계획이 있을 것이다." 

고 하니, 박습이 아뢰기를,

 

"어찌 감히 다른 계획이 있겠습니까. 다만 새로 판서(判書)에 임명되어 사무를 알지 못할 뿐이었으며, 또 강상인(姜尙仁)이 말하기를, 갑사(甲士)에게 휴가를 주는 등은, 모든 군무는 마땅히 예에 의하여 주상전께 아뢰라. 라고 한 것입니다. 제 생각은, 상인은 원래 잠저(潛邸)의 옛날 신하이며 오랫 동안 병조에 있었으므로, 다만 상인의 말만 따랐을 뿐이요, 감히 이의(異議)를 하지 못한 것이며, 김국진(金國珍)의 일은 제가 일찍이 알지 못한 것이고, 매[鷹子]에 관한 일은 상인이 말하기를, 마땅히 왕의 명령으로 공문(公文)을 보내야 될 것이다하기에, 제가 감히 어기지 못하였습니다. 채지지(蔡知止)가 말한, 이각(李慤)이 제가 귀양간 곳을 지나면서 저와 상인에게, 군사(軍事)는 마땅히 상왕전(上王殿)에 아뢰어야 될 것이다. 라고 하였으나, 상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즉위년 13일)

 

 

 

‘다른 계획이 있는것이다’란 말로 엄포를 놓고 자백하라 하지만 정황상 박습은 자백할것이 없다. 병조판서에 임명된지도 얼마 안되고 하필 강상인이 바로 아래 직책이다. 그리고 강상인은 태종과는 아주 가까운 가신관계다. 여기서 일이 꼬였다. 박습의 근무태도는 ‘상인은 원래 잠저(潛邸)의 옛날 신하이며 오랫 동안 병조에 있었으므로, 다만 상인의 말만 따랐을 뿐이요, 감히 이의(異議)를 하지 못한 것이며’란 말에 농축되어 있다.



자신보다 아래직책의 사람이 최고권력자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박습의 업무수행에 큰 의지이자 그늘을 드리웠을 것이다. 사무를 판단하고 추진할때마다 눈치를 보지 않았을까.

 

 

상왕이 박습에게는 심하게 고문을 하지 말도록 하자고 하였으나 대사헌 허지는 강력한 고문으로 심문을 하자고 요구한다. 대사헌 즉 지금의 검찰총장인 자리는 언제나 더 큰 사건을 만들고 이를 처리수습하는 일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믿기에 그러한가 아니면 상왕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박습이 다시 이의를 하지 않았으니, 죄가 없을 수 없지마는, 그러나 강상인과는 죄과(罪科)가 다르니, 차마 고문할 수는 없다.” 고 하였다. (대사헌) 허지가 아뢰기를,

 

"박습이 열 살 난 아이가 아니며, 자신이 장관(長官)이 되었는데, 어찌 대체(大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다만 상인의 말만 따르겠습니까. 마땅히 국문을 더해야 될 것이오니, 죄가 반드시 이의를 하지 않는 그것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고 하였다.

 

 

 

13일 이 날 박습을 신문하며 국문장에서 오간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상왕이 8월달 시건 초기에서 외견상 마무리를 한것으로 보이나 상왕 스스로 탐문 수사를 하였거나 다른 신하들이 실록에 나오지 않는 경로로 사건에 대해 추가 보고를 한듯하다. 그리고 가만두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든 태종은 칼을 꺼내 들었다.

 

박습에 대한 신문내용을 보면 안타깝다.  첫째, 병권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상왕에게 하지 않고 세종에게만 아직 취임한지 얼마 안되어 어리둥절 한데다가 상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둘째는 제2차 왕자의 난 때 처벌받고 지방 병영의 하급병으로 좌천된 김국진을 불러 들이라는 명령을 태만하게 한 점 그리고 각 도에서 진상하는 매에 대한 업무를 선지로써 상왕의 명으로 처리를 하기로 하고는 미적 거리다가 말을 고쳐 왕지(세종의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한것이다.

 

 

19일부터는 강상인을 고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사심없음을 토로했다.

 

 

의금부에서 강상인을 신문(訊問)하니 복죄(服罪)하지 않으므로, 볼기를 치고 압슬(壓膝)을 가하였으나 또한 복죄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내가 30년 동안이나 원종 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니, 어찌 다른 마음이 있으랴. 다만 일을 잘 알지 못한 것뿐이다.” 고 하였다. 이명덕 등이 상세히 아뢰니, 선지(宣旨)하기를,

 

"상인이 볼기 맞는 것을 피하려고 하여 이러한 기망(欺罔)의 말을 꺼내니, 간사하고 교활함이 이보다 심함이 없다. 마땅히 다시 끝까지 신문하고, 또 그 당여(黨與)도 신문해야 될 것이다. 우리 부자(父子) 사이에 이와 같은 간사한 사람이 있으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고 하였다.

 

 

결국 상왕의 명에 의해 형장에 압슬형을 더하고 죽기 직전까지 몰아댔다. 결국 있는말 없는 말이 다 나온다. 상인은 포기하고 아예 임금이 원하는 말을 하는것이 좀더 편히 죽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연루된다. ‘끝까지 심문하고 연루된 사람들(당여)도 신문해야 한다.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란 결심이 가혹한 피부림을 불렀다.

 

이때의 태종은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고 이 일로 인해 세종시대의 치세가 가능했다는 평가도 한다. 가신과 판서들과 임금의 장인이자 영의정을 죽이고 그 식솔들을 노비로 만들어 버린 결과를 보면 모를 일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게 권력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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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1 [16:5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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