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 실록여행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실록여행11 - 상왕 태종, 수습임금 세종을 위하여 손에 피를 묻히다(6)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08/09 [13:19]
강상인은 계속 고문을 받는다. 상왕 태종은 마음을 먹었다. 임금 자리가 바뀐 지 얼마 안 되었고, 군사의 일은 자신이 주관하겠다고 분명히 선언했음에도 꺼져가는 권력과 떠오르는 권력 사이에서 딴 마음을 먹는 자를 솎아 내기로 한 것이다. 그 최종 목적이 원래부터 세종의 장인 심온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결과적으로는 외척의 발호 자체를 차단하는 아주 강력한 효과를 보게 된다. 사돈을 죽이고 집안 가솔을 노비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의 딸은 왕후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당대 사람들의 시선에서 참으로 묘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고문을 당한지 수일이 지나 강상인은 생각나는 모든 것과 없었던 일까지 털어 놓는다.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형벌 중에 가장 고통스럽다는 압슬형을 네 번 넘게 당했다. 압슬형이란 등 뒤의 기둥에 손을 돌려 묶고 바닥에 깨진 도자기를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린 후 맷돌을 얹는 것이다. 서서히 무릎과 살갗과 뼈로 파고드는 사금파리가 주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1월 22일 실록은 다음과 같은 장면을 전한다.
 
의금부에서 이관과 심청과 조흡을 잡아서 대질하니, 심청이 말하기를,
“나는 내금위(內禁衛)의 절제사가 된 까닭으로 상인(尙仁)과 시위(侍衛)의 허술한 것을 의논하였을 뿐이니, ‘군사가 두 곳으로 갈라져 있다’고 한 한 마디는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 하면서 힘써 이를 변명하였다가, 형벌을 받고 나서 그제야 복죄(服罪)하였다. 이관을 신문하니, 이관이 술에 몹시 취하여 정신이 산란하여 말에 차서가 없어, 처음에는 상인이 일찍이 나에게 들른 일이 없다고 하였으나, 고문을 당하고는 그제야 복죄하였다. 조흡을 신문하니, 조흡이 말하기를, “상인이 일찍이 나에게 들렀는데, 내가 방금 군사를 나누어 시위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상인에게 말하기를, ‘군사는 반드시 상왕이 이를 주관하셔야 된다.’고 말하였다.” 고 하고, 상인을 신문하니 말이 같으므로, 이에 조흡은 석방하였다. 
 
상인이 또 압슬형을 당하고 말하기를,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의정 심온을 상왕전의 문밖에서 보고 의논하기를, ‘군사를 나누어 소속시키는데 갑사(甲士)는 수효가 적으니, 마땅히 3천 명으로 해야 되겠다. ’고 한즉, 심온이 또한 옳다고 하였으며, 그 후에 또 의논할 일이 있어 날이 저물 때에 심온의 집에 가서, ‘군사(軍事)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하였더니, 심온도 또한 ‘옳다’고 하였고, 또 장천군(長川君) 이종무(李從茂)를 보고, ‘군사(軍事)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하였더니, 종무가 빙긋이 웃으면서 수긍하였으며, 또 우의정 이원(李原)을 대궐 문 밖 길에서 만나, ‘군사를 나누어 소속시키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이를 어찌 말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
 
드디어 영의정 심온의 이름이 나왔다. 
왕후의 아비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의 신분으로 온 장안백성의 환대를 받으며 중국에 특사로 간 심온이다. 원경왕후와 민무구, 민무질 등의 외척 세력에 대한 염증과 자신과 사돈이었던 김한로의 양녕대군에 대한 삐딱한 충성심에 대한 아픔이 작용해서 이번 강상인 사건의 목표지점이 된 듯하다. 심온은 아직 귀국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상황을 모른다. 
또 하나는 장천군 이종무도 거론된다. 이때 심각한 죄목이 적용됐더라면 대마도 정벌의 이종무 장군은 없었을 것이다. 태종은 결론을 말한다.
 
“과연 내가 전일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진상(眞狀)이 오늘날에야 나타났구나. 마땅히 대간(大姦)을 제거하여야 될 것이니, 이를 잘 살펴 문초하라.”
 
강상인의 입에서 나온 사람들 중 이종무를 비롯한 몇은 무고함이 드러났다. 상인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헛실토를 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나오는 실록의 장면 속에는 참으로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임금(세종)이 매일 해왔던 상왕에게 문안인사 준비를 하던 차다. 내관이 달려와 의금부의 일을 말한다. 장인께서 연루되어 버렸다고. 하지만 임금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상왕의 교지가 이와 같으니 어찌 하겠는가’라는 한마디와 전해들은 말을 상왕에게 전달한 것이 전부다. 임금의 부인인 소헌왕후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을텐데 말이다. 이 장면은 세종의 젊은 임금시절에 겪은 참으로 안타까운 가정과 정치의 비극인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후는 어떻게 대면했을까?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품게 됐을까? 어차피 시간은 자기편인데 말이다.
 
이원과 이종무가 옥에 나아가서 상인과 대변(對辨)하는데, 이원이 상인을 불러 말하기를,
“강 참판은 사람을 죄에 빠뜨리지 말라.”고 하였다. 종무도 또한 대변하니, 상인이 말하기를,
“고초를 견디지 못한 때문이니, 실상은 모두 무함(誣陷)이었다.” 고 하였다. 
심온은 사은사(謝恩使)로 연경(燕京)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대변(對辨)할 수가 없었다. 이보다 먼저 상인이 여러 번 고초를 당하였으나, 말과 기색이 꺾이지 않았는데, 이날에 이르러서는 말이 입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임금이 수강궁에 문안 가려고 하는데, 내관(內官) 김용기(金龍奇)가 의금부에서 신문한 일을 아뢰고, 인하여 아뢰기를,
“심 본방(沈本房)이 군사가 한 곳에 모여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옵니다.”하니, 임금이 대답하기를,
“비록 그렇지마는 상왕의 교지(敎旨)가 이미 이와 같으시니 장차 어찌하겠는가.”하였다. 
나라 풍속에 임금의 장인(丈人) 집을 본방(本房)이라고 부른다. 주상이 수강궁에 나아가서 용기(龍奇)의 말을 상세히 상왕께 아뢰니, 상왕이 말하기를,
“내가 들은 바는 이와는 다르다. 과연 이와 같다면 무슨 죄가 있으리요.” 하고, 즉시 좌의정 박은을 부르니, 박은이 병을 핑계하고 오지 아니하므로, 상왕이 박은의 뜻을 헤아려 알고,
 
이제 상왕 태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논란을 정리하려고 한다. 박은은 노회한 신하다. 함부로 이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으려고 병을 핑게했다. 하지만 결국 심온의 처벌을 주장하는 입장의 선봉에 서게 된다. 그리고 사건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11월 25일의 일이다.
 
“심온이 만약 사신과 같이 오거든 심온에게 병을 핑계하고 짐짓 머물게 하여 비밀히 잡아 오되, 사신으로 하여금 알게 하지는 말 것이니, 중국 조정에서 우리 부자 사이에 변고가 있는가 잘못 알까 염려된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08/09 [13:19]  최종편집: ⓒ 세종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름이 그려놓은 하늘 풍경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여주시, 우후죽순 ‘태양광 발전소’ 제동 걸었다 / 세종신문
여주시, 폭염·가뭄 농가 피해 상황 접수 시작 / 세종신문
12개 읍면동 이·통장 간담회, 무슨 얘기 오갔나 / 세종신문
백종덕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 아이스버킷 챌린지 동참 / 세종신문
[기고]도예인의 눈으로 여주 돌아보기 / 세종신문
여주시체육회, 임시총회 개최… 신임회장에 임원진 선임권한 위임키로 / 세종신문
“왜소한 양촌을 거대한 양촌으로 만들고 싶다” / 세종신문
여주시 공무원, 여자화장실 몰카 찍다 적발… 구속영장 기각 / 세종신문
여주시체육회 임원구성 마무리… 수석 부회장에 채용훈 씨 선출 / 세종신문
[사설] 공무원, 주인이냐 마름이냐 그것이 문제다 / 세종신문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