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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장애인심리상담사’가 되는 것이다”
[인터뷰] 지체장애인 김호경 씨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10/06 [17:16]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지체장애인 김호경(54세) 씨를 오학동의 한 빵집에서 만나보았다. 

김 씨는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오다 2018년 4월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8월에는 중학교 검정고시도 통과하였으며 현재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 뇌병변으로 지체장애를 갖게 된 김호경 씨가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세종신문


여주가 고향인가?

1965년 금사면 이포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은 아직도  이포에 살고 계신다. 옛날에는 복지혜택이 많지 않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그냥 그대로 집에서 지내야만 했다. 나도 걷지를 못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그냥 집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몇 군데 없었고 또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그냥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 시절 집은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것이 있나?

어린 시절 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그래도 10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이포나루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은 날 이른 아침이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강가를 걷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때는 이포나루에 나룻배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작은 배를 사공이 노를 저으며 사람들을 태워주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나는 그 나룻배를 타보지는 못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시절 이포나루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오학동에 사는데 언제 독립하였나?

2010년에 했다. 동생들이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자 나 혼자 집에 남게 되었는데 나만 왜 집에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내가 연로한 부모님의 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부의 지원으로 자그마한 집을 얻을 수 있어서 용기를 내서 독립을 하였다. 8년 전 처음 독립할 때도 활동보조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때는 한 달에 100시간 지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이포에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나를 돌봐주셨다. 지금은 활동보조 지원을 하루에 16시간 받고 있으니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생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독립하기 전 집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부모님들이 다 해주어 내가 뭘 못하는지 알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독립을 하고 나서 보니 몸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활동보조지원사 선생님들이 밥도 다해주고 먹여주며 일상생활을 대부분 챙겨주니까 그나마 생활이 가능하다. 스포츠 중 축구를 좋아 하고 축구선수 중에서는 베컴과 박지성 선수를 좋아한다. 그 선수들이 축구장에서 뛰어다니며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 나도 괜히 신이난다. 


살아오면서 기쁨과 보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

8년 전 난생 처음으로 독립을 할 때 정말 설레고 기뻤다. 그리고 평생 공부를 하지 못해 글을 읽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 감동 그 자체다. 


최근 초등·중학교 검정고시를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정고시를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평소 글을 읽지 못해 글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이번에 새로 만난 활동보조지원사 선생님이 검정고시를 한 번 보라고 해서 도전해 봤다. 처음에 세종도서관에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가 있다고 해서 초등학교 검정고시 과정도 있는지 알아 봤는데 초등학교 검정고시는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열리지가 않는다고 하였다. 평생학습센터에도 알아 봤는데 그곳에서도 없었다. 2017년 봄 장애인복지관에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이 새로 열리게 되었다. 우선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에 신청을 하고 집에서 독학으로 초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2018년 4월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8월에 중학교 검정고시도 통과하였다. 활동보조지원사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왼쪽) 김호경 씨가 찍은 기자의 모습. (오른쪽) 기자가 찍은 김 씨의 모습. 인터뷰를 하며 김 씨와 기자는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 세종신문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느낀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하였나?

처음에 초등학교 검정고시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로 중학교 검정고시 반에서 수업을 듣다 보니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전에 중학교 검정고시 반이 끝나면 집으로 와서 활동보조지원사 선생님이 초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따로 시켜 주었다. 너무 어렵고 힘들어 포기 하고 싶은 때가 많았지만 그 때마다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두자!’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통과할 수 있었다. 
(활동보조지원사 : 김호경님은 정말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입술이 트고 땀띠가 나도 멈추지 않고 공부를 했다. 의지도 강했지만 타고난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검정고시를 보자고 적극 제안하였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힘들다. 


검정고시를 통과하였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한마디로 얼떨떨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해서 자격을 취득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여주에는 세종대왕릉이 있다. 평소 세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도 세종대왕릉에 두 번 정도 가봤다. 세종대왕은 정말 좋은 임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드라마도 좋아하고 언젠가 세종대왕 영화를 본 적도 있다. 내가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글,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드셨다. 글 배우는 것이 힘들지만 우리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은 그 분의 애민정신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글을 모르다가 알게 되니 우리 한글이 정말 좋은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세종인문도시에 대해 들어보았나? 장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이라 생각하나?

세종인문도시에 대해서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우리 여주는 더 발전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 복지는 한 참 더 발전해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느낄 수 없지만 우리 장애인들은 길을 가고 싶어도 길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다닐 수가 없고,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싶어도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도 승강기가 없거나 경사로가 없으면 들어 갈 수가 없다. 여주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있는 곳 보다 없는 곳이 더 많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는 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전동휠체어를 내가 작동하지 못하고 활동보조지원사 선생님이 작동해 주어야 움직일 수 있다. 여주에서 우리 장애인들이 인도를 통해 온전하게 길을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도를 따라 가다 보면 길이 막혀 차도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 정말 많다. 제대로 된 인문도시라면 장애인들의 생활이 세심하게 배려하는 그런 도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자리가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나?

난 심리학을 공부해서 심리상담사를 하고 싶다. 특히 장애인 심리상담사를 하고 싶다. 지금은 나도 언어심리상담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장애인이 장애인의 심리상담을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장애인들 사이에 공감과 소통이 더 많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장애인들 사이도 소통이 잘 안되고 끼리끼리 모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이 자기들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상담을 할 대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난 장애인심리상담사가되고 싶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수줍고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를 잘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활동보조지원사 : 오늘의 인터뷰가 김호경 님에게 정말 좋은 자리가 되었다. 이후에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장애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김호경님의 스토리를 듣고 희망을 찾고 삶의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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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06 [17:1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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