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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지킴이, 이포나루 뱃사공 ‘호랭 할아버지’
기획 인터뷰 ① 이포나루 이야기 김인기(84)·이광선(76) 씨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8/10/11 [17:04]
여주에는 옛 나루터가 많다. 지금은 사라진 여주 나루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6회에 걸친 기획 인터뷰를 시작한다. 

첫 번째로 이포나루 주변에 살고 있는 김인기 노인과 이광선 노인을 만나보았다. 경운기 사고로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고 나온 김인기 노인(이하 김)과 손녀를 맞이하다 뒤 늦게 온 이광선 노인(이하 이)이 이포나루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 왼쪽 지팡이를 짚은 이가 김인기 어르신. 그 옆이 이광선 어르신.     © 세종신문

여주가 고향인가?

김 : 올해 여든네 살이다. 지금은 이포1리에 살지만 이포2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1학년 다니고 해방을 맞이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나서 학교공부를 잠깐 쉬다가 전쟁이 끝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교가 없어서 진학은 못하고 있었는데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이포중학교 전신인 애향중학교가 생겨 입학을 하였다. 열아홉이 되던 1956년에 중학교 공부를 중단하고 서울 종로3가에 있는 양복점에 시다로 들어갔다. 


이포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갔나?

김 : 칠월 칠석에 종로에 있는 양복점에 도착했으니 내가 여주에서 떠난 날이 음력 7월 6일이다. 이포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대신으로 건너가 대신에서 양평역까지 걸어갔다. 양평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갔다. 그 당시 종로 3가에는 남북여객, 강원여객, 대동여객 등 몰려있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내가 이포를 떠날 때 이포나루 뱃삯이 50원인가 했다. 이포사람들은 집집마다 여름에 보리 한말, 가을에 벼 한말을 뱃삯으로 내고 평소에는 그냥 타고 다녔다. 


서울 양복점에 취직하게 된 계기는?

김 : 우리 집 형제가 5남매인데 내가 둘째였다. 위에 형도 있고 해서 난 일찍 돈 벌러 서울로 갔다. 동네 친구가 먼저 양복점에 취직을 했는데 내가 자리가 나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자리가 났다는 편지가 왔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처음 2년 동안은 월급도 없이 먹고 자고 청소하며 기술만 배웠다. 바지와 조끼만 만들 수 있으면 다른 양복점으로 옮겨 돈을 받으며 일을 했다. 그리고 재킷을 만들고 그 다음에 코트를 만들었다. 코트까지 다 만들 수 있으려면 6∼7년이 걸렸다. 


이포1리에서는 언제부터 살았나?

김 : 이포를 떠난 지 9년 만에 돌아왔다. 내가 다시 돌아온 1965년 이포리는 정말 번성하였다. 큰 시장도 있고 우시장도 있었다. 여주 사람들이 누구를 접대하려면 이포까지 왔을 정도니까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우시장 위쪽에 ‘이포양복점’을 차렸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양복점을 하지 않는다. 그 당시는 양복을 면서기와 같은 공무원들이 월부(매월 일정 금액을 분할지급)로 해 입었다. 그것도 면사무소나 학교의 회계담당이 보증을 서야 했다. 참 그때 생각하면…


이포는 어떤 마을인가?

이 : 이포는 조선시대 마포, 광나루, 조포나루 와 같이 한강의 4대 포구 중의 하나였다. 강원도의 오징어나 명태를 싣고 이포나루로 오면 여기서 수원, 이천, 광주로 나갔다. 그리고 장배(장사배)가 단양, 충주 등에서 곡물을 실고 내려오다 이포나루에서 풀어 놓으면 그 곡식들도 전부 경기도 일대로 팔려 나갔다. 
일제시대 때는 금광이 있어서 돈이 많이 몰려 도회지의 번화가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단종이 단양으로 유배 갈 때 이포나루에서 하룻밤 묵었다는 말도 있고 명성황후도 무슨 난을 피해 이포로 왔었다는 말이 있다. 


▲ 이포나루의 전경     © 세종신문


이포나루에 대한 추억은?

이 : 예전 한겨울에 강원도에서 생오징어와 동태를 싣고 온 트럭을 이포나루에서 바지선(자동차를 건네주는 배)에 싣다가 그만 트럭이 강물에 빠졌다. 사고 현장에서 내가 구경을 하였는데, 사공이 얼음이 좀 더 얼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운전사가 독촉을 해서 할 수 없이 배에 차를 싣다가 배가 밀려나면서 차가 강물에 빠져버렸다. 당시에는 크레인이 없어서 사고 후 20여일이 지나서 군용크레인이 와서 끌어 올렸다. 동태와 오징어들이 강물에 마구 던져져 있었던 장면이 기억 난다. 여름에 장마가 져 강물이 불어날 때는 여기 이포나루에서 배를 타면 강 건너 개군면까지 떠내려가며 건너곤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 올 때는 사공과 동네사람들이 배를 끌고 더 상류까지 올라가서 배를 타고 건너야 이포나루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도 배를 끌어 봤는데 참 힘든 일이다. 


이포나루 사공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다면?

이 : 우리가 어렸을 때 뱃사공으로 두 명이 생각이 난다. 호랭 할아버지라는 아호로 불렸던 서완실 씨와 A급 뱃사공 정윤천 씨가 있었다. 서완실 씨가 정윤천 씨보다 8~9살 위였는데 정윤천 씨가 뱃사공 선배여서 서로 말을 놓지 못했다. 정윤천 씨는 열네 살 때부터 장배를 타고 여주를 지나다니던 사람이라 남한강을 손금 보듯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살이 어디가 세고, 바위는 어디에 있으며, 강의 깊고 낮은 곳을 속속들이 잘 아는 A급 뱃사공이었다. 

김 : 호랭 할아버지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나루터에서 멱이라도 감을 때면 위험하다고 쫓아버렸는데 얼마나 무서웠으면 호랑이 할아버지(호랭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겨울에 강이 얼어 썰매를 탈 때도 호랭 할아버지는 경계를 정해 넘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는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호랭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호해주시는 동네 어른이셨다. 


한겨울에는 배를 어떻게 운행하였나?

이 : 강이 꽁꽁 얼 때는 지엠트럭(미군 트럭)이 지나가도 될 정도였다. 그럴 때는 마을 사람들이 걸어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의 안내를 받았다. 뱃사공은 강 어디가 얕은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빠질 경우를 대비해서 긴 대나무 장대를 하나씩 들고 건넜다. 그리고 얼음이 꽁꽁 얼지 않았을 때는 얼음을 깨고 배가 지나는 길을 만들었다. 배가 얼음을 깰 때는 호랭 할아버지께서 동네 조무래기들을 배에 태워주셨다. 조무래기들이 배 양쪽에 서서 배를 출렁거리면 얼음이 깨지는데 그 때 호랭할아버지가 노를 저어 배를 밀고가면 얼음사이로 뱃길이 생겼다. 


▲ 김인기 어르신이 운영하던 이포양복점     © 세종신문


이포나루에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

김 :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단종이 귀향가면서 이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난 80평생 세종대왕릉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신륵사를 거쳐 세종대왕릉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 때 내가 몸이 아파 소풍을 가지 못했다. 그 후로도 세종대왕릉 앞에까지는 가봤어도 영릉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 


이포가 예전의 명성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 것 같나?

김 : 이포가 예전의 명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있는 시설이나 관광자원이라도 잘 살렸으면 좋겠다. 이포보도 만들어 놓고 관광지가 있다고 홍보를 하고 그러는데 이포보에 가보면 뭐하나 제대로 된 시설이 없다. 한마디로 구경거리가 없다. 강 건너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도 개장을 못하고 있고 여름에는 화장실도 잠가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이 와서 쉴만한 그늘 하나도 없이 휑하니 또 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4대강 사업 후 강 주변이 깨끗해졌지만 정작 사람들이 찾아와 관광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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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1 [17:0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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