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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46-신미대사, 실록이야기와 영화 ‘나랏말싸미’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8/07 [14:03]
▲ 김태균 세종신문 대표
실록에는 어느 날 갑자기 임금께서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사가 불쑥 튀어나온다. 아무런 설명이나 분위기도 없었다. 세종 25년, 서기 1443년 12월 말일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25년 12/30)
 
이 글은 사관이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자의 명칭과 기능을 아주 함축적으로 잘 묘사해 놓았다. 어전에서 이 문자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시연을 보여주었을까, 아니면 발표하기 전에 이미 사용법과 만들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을까. 

언문이라 부르고, 초중종성으로 합한다는 것, 모든 발음과 상황을 다 적을 수 있다는 것, 글자가 간단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훈민정음이란 것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사관의 글을 보며 한편으로는 임금과 비서실장과 사관이 한자리에서 훈민정음을 시연해 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근 ‘나랏말싸미’란 영화를 통해 존재가 부각된 인물이 승려 신미대사다. 실록속에 기록된 신미는 어떤 사람인가?

사실 신미대사, 즉 신미라는 법호를 쓰는 승려가 실록에 나타나는 시점은 한글창제 후 3년이 지나서다. 세종25년(1443년)에 창제를 공식화했고 신미는 세종28년(1446년)에 큰 불교행사를 진행하는 책임자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이미 왕실과 깊은 내왕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28년 5월 27일의 기사다.
 
승도(僧徒)들을 크게 모아 경(經)을 대자암(大慈菴)에 이전하였다. 처음에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 이영서(李永瑞)와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등을 명하여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서 금(金)을 녹이어 경(經)을 쓰고, 수양(首陽)·안평(安平) 두 대군(大君)이 내왕하며 감독하여 수십 일이 넘어서 완성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크게 법석(法席)을 베풀어 대군(大君)·제군(諸君)이 모두 참예하고, 이 회(會)에 모인 중이 무릇 2천여 명인데 7일만에 파(罷)하였으니, 비용이 적지 않았다. 소윤(少尹) 정효강(鄭孝康)이 역시 이 회에 참예하였는데, 효강이 성질이 기울어지고 교사(巧邪)하여 밖으로는 맑고 깨끗한 체하면서 안으로는 탐욕을 품어, 무릇 불사(佛事)에 대한 것을 진심(盡心)껏 하여 위에 예쁘게 뵈기를 구하고, 항상 간승(奸僧) 신미(信眉)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우리 화상(和尙)은 비록 묘당(廟堂)에 처하더라도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는가.” 하였다.(28년5월27일)

▲ 영화 나랏말싸미에 등장한 신미대사(박해일 분).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깊숙히 관련된 것으로 그려지자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당시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세종의 아들 수양·안평대군과 교류하고 있었고 임금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아들 성녕대군집에서 불경의 판본을 만들고 인쇄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전부터 깊이 교류를 이어오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실록에 등장한것은 큰 불교행사를 하고 왕실의 인물들이 공식적으로 관여하였기에 기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관이 별로 좋지 않게 묘사한 정효강이란 인물은 신미에게 조정에 참여하여도 좋겠다는 아첨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당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한글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영화적 상상력이 스며들 시점은 3년전 창제했다는 기사 이전부터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대목에 스며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일 뿐, 이후의 신미대사는 궁궐과 왕실에  불교가 자리잡게 만드는 일에 여러가지 기여를 한다. 이 과정에는 왕실의 실세 왕자들과의 교분도 있었고 동시에 동생도 그 관계들에 한몫 한다. 신미의 동생 수온이 벼슬을 살고 있었다. 
 
수온(守溫)의 형이 출가(出家)하여 중이 되어 이름을 신미(信眉)라고 하였는데, 수양 대군(首陽大君) 이유(李瑈)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심히 믿고 좋아하여, 신미(信眉)를 높은 자리에 앉게 하고 무릎 꿇어 앞에서 절하여 예절을 다하여 공양하고 수온(守溫)도 또한 부처에게 아첨하여 매양 대군(大君)들을 따라 절에 가서 불경을 열람하며 합장하고 공경하여 읽으니, 사림(士林)에서 모두 웃었다.(29년 6월5일)
 
신미대사는 나름 법력이 있었나 보다. 수양·안평 두 대군이 직접 절하며 예를 다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선비들의 무리에게 소문이 나자 비웃음을 당한다. 곧 생원 한사람이 상소를 올린다. 
 
생원(生員) 유상해(兪尙諧)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듣건대, 요망한 중 신미(信眉)가 꾸미고 속이기를 백 가지로 하여 스스로 생불(生佛)이라 하며, 겉으로 선(善)을 닦는 방법을 하는 체하고 속으로 붙여 사는 꾀를 품어서 인심을 현혹(眩惑)시키고 성학(聖學)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 신미(信眉)의 아우인 교리(校理) 수온(守溫)이 유술(儒術)로 이름이 났는데, 이단(異端)의 교(敎)를 도와서 설명하고 귀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붙어서 아첨하여 진취(進取)에 자뢰하니, 비옵건대, 수온(守溫)을 잡아다가 그 죄의 이름을 바루고, 특히 요망한 중을 베어 간사하고 요망한 것을 끊으면, 신하와 백성이 모두 대성인의 하는 일이 보통에서 뛰어남이 만만(萬萬)인 것을 알 것입니다.” 하였으나, 회답하지 아니하였다.(30년 7월26일)
 
이어서 정부에서 인사가 있었다. 그때 신미의 동생 김수온이 승진을 한다. 
 
김수온(金守溫)으로 수 승문원교리(守承文院校理)를 삼았는데, 수온(守溫)은 본래 부처에 아첨하는 자이다. 그 형 중 신미(信眉)가 승도(僧道)를 만들어 꾸며 임금께 총애를 얻었는데, 수온(守溫)이 좌우를 인연(夤緣)하여 수양(首陽)과 안평(安平) 두 대군과 결탁해서 불서(佛書)를 번역하고, 만일 궁내에서 불사(佛事)가 있으면, 사복 소윤(司僕少尹) 정효강(鄭孝康)과 더불어 눈을 감고 돌올하게 앉아서 종일 밤새 합장(合掌)하고 경(經)을 외고 염불을 하며 설법하여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또 항상 대군(大君)을 꾀이기를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이 법화(法華)나 화엄(華嚴)의 미묘(微妙)함에 미치지 못한다 하므로, 여러 대군들이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라 여기어 임금이 특별히 정조(政曹)를 제수하라고 명하였는데, 마침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우선 이 벼슬을 준 것이었다.(30년9월8일)
 
수온이 받은 승문원 교리는 지금으로 치면 5급 서기관급인 종 5품직이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형인 신미와 함께 왕실에 불도를 전하고 세를 만드는데 첨병역할을 하게 된다. 이때 뒷배가 수양과 안평이고 정효강이란 자이다. 기사의 내용에는 임금께 총애를 얻었고, 특별히 정조라는 직책인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기려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미 임금과 대군을 포함한 왕실과 관계가 매우 돈독한 상태임은 분명해 보인다.

수온은 신미의 동생이고, 신미는 막강한 대군들의 존경을 받던 승려였으니 영화적 상상력이 스며들 충분한 여지는 된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영화처럼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리라.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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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7 [14:0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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