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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낭비하는 인생
[이상국 연재 수필] 아들의 초대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8/08 [10:32]
▲ 수필가 이상국     ©
3년 전 벼 병충해 방제를 하려고 꽤 많은 농약을 사 왔다. 그런데 이 사정 저 사정으로 살포撒布하지 못했다. 다음 해에 쓰지 하고 보관한 지 3년째다. 잘못하면 아주 폐기처분하고 말지. 그 돈이 얼마냐. 적어도 10만 원은 족히 될 텐데.

낭비한 게 농약뿐이 아니다. 옷가지, 책, 일상용품, 시간…. 옷을 사서 집에 가져와 입어보니 아니올시다이다. 사이즈가 안 맞아서가 아니다. 취향이 안 맞는 것도 아니다. 입기 싫은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대로 방치된 옷이 한두 벌이 아니다. 구두도 그렇다. 몇 번 신다 버려둔 구두, 그렇게 버려둔 옷과 구두만으로도 한 트럭은 되지.
내가 사오는 옷도 있지만 대개 아내가 사오는데 아내는 참으로 돈이 어디서 나는지 심심하면 옷이다, 늙으면 더 잘 입어야 한다며.

‘돈은 안 쓰는 것이다’ 프로에 나오는 김생민의 말대로 하면 옷은 한 번 사서 입었다 하면 기본이 20년이라는데. 언제 20년씩이나 입어 떨궈. 이 옷들 20년씩 입고 죽으려면, 살아야 할 날들이 도대체 얼마냐.
거기다 쓰다 버린 러닝머신, 자전거, 아령, 역기, 등산화, 곤봉, 아, 나는 굉장한 부자. 그런데 그 많은 물건들을 내다 버려야 하다니 얼마나 많은 돈을 탕진하는 건가.

읽을 거라고 장만한 책도 읽지 못하고 쌓아 놓은 게 한두 권이 아니다.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 에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 들뢰즈,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파스칼의 『팡세』, 아우어 바흐의 『미메시스』…. 이건 완전 욕심이다. 읽지도 못할 걸 왜 사다 놓았는지.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어느 철학자가 그의 빽빽한 서고를 보여주며 그 책들 중에 못 읽은 책들이 꽤 많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천재 철학자도 못 읽는 책이 있다니.
그렇다. 책을 샀을 때와는 달리 접했을 때의 분위기, 상황, 마음의 준비 상태에 따라 읽기가 쉬워질 수도 있고 어려워질 수도 있다. 소설도 몇 장 읽다 질려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돈보다 더 한 건 시간―세월의 낭비다. 쓸데없이 하사관으로 들어가 남보다 곱빼기로 군대 생활한 것, 죽자사자 할 정도로 사랑한 여자도 아니면서 죽자사자 연애편지 쓰고 기다리고, 그렇게 몇 년 동안 허비한 세월하며, 온라인 강좌로 열심히 듣고 열청熱聽, 열 생각, 열 암기하던 기나긴 시간들, 모두 잃어버린 세월이다.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할 태국 말 배우자고 태국에 갔다 온 것, 말 배운다고 4개월 동안 버린 학원비, 거기다 바친 열정과 암기, 그리고 놓쳐 버린 시간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낭비벽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시간과 열정, 끊기지 않는 정염으로 돈과 시간을 기탄없이 버려가며 뭘 살까, 뭘 할까,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아직도 궁리 중이다.

혹시 산다는 거, 그 자체가 낭비 아닐까?
 
수필가 이상국
 
*이 글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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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8 [10:3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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