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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 정치칼럼] 공화주의 정치와 민생
 
신철희   기사입력  2019/12/05 [14:06]
▲ 신철희 여양 한강문화연구소 소장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데 조심스러운 단어들이 있다. 동무나 인민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다. 동무는 친구를 뜻하는 매우 정감 있는 단어이고, 인민(人民)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과 평민을 모두 포함한 시민 또는 백성이라는 평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언급하는것을 꺼리게 된다.

한편, ‘공화’(共和)는 원래의 의미가 오염된 대표적인 경우다. 공화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나라 시대에 여왕(厲王)이 폭정을 일삼자 중신들이 여왕을 쫓아내고 공동통치한 시기를 사마천이 ‘공화’라고 불렀다. ‘왕이 없는 통치’를 의미하는 이 단어가 개화기 때 동아시아에 전해진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되면서 오늘날에도 많이 통용되는 단어가 된 것이다.

공화주의에는 자유, 평등, 법치 등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필자는 공화주의의 핵심은 공존에 있다고 본다. 이 공존의 정신은 혼합정의 원리에 담겨있다. 대표적으로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정치체제가 혼합정이었는데,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섞어서 귀족과 평민을 비롯한 여러 세력들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상대 세력을 완전히 말살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존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존의 정신은 로마가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런데 공화 또는 공화주의는 우리 현대사에서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공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 창당한 공화당이 떠오른다. 미국정치에서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펼친 링컨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 공화당인데, 거기에서 이름을 따온 우리나라의 공화당은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이후에도 공화라는 말이 들어간 몇몇 정당이 존재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공화주의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또 관심도 없어 보인다. 

공화라는 말이 이렇게 오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주의 정치를 하자고 한다면 오해받기 쉬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정치에서 꼭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서 공화주의 정신이 필요한 이유는 최근의 우리 정치판이 선악 이분법에 기반해서 상대방을 배제하고 말살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상대 세력이 사라지면 좋은 세상이 올 것처럼 선전하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타도해야 할 악을 상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이나 실패를 무마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데 있다. 거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소한 악은 덮어두자는 태도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보기에는 오십보백보다. 서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는 너무 무능하고, 사실 관심도 없어 보인다. 젊은이들에게는 신구의 차이만 있을 뿐, 기득권이기는 매한가지다.

공화주의 정치나 중도정치를 말하면 양비론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엄격하게 시비를 가려주기를 기대할 때 중립을 지키는 사람이 더 얄밉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양비론 자체가 잘못인 것은 아니다. 둘 다 잘못해서 잘못했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란 말인가? 양비론은 절대 안된다는 태도에는 기득권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제3의 대안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데, 아무리 잘못했어도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종용하는 논리 말이다.

그런데 상대당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하다. 아주 간단하다. 당분간은 상대당이 뭐하는지 또 뭐라 말하는지 관심을 끊고 다른 무엇보다도 민생을 개선하는데 매진해보라. 국민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 당을 향하게 되고, 상대당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어떻게든 적을 만들어서 공격하지 않으면 못견뎌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사실 민생에 올인 할 실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SNS에 올라오는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들의 글을 보면 자신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이야기보다 상대당 지도부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에 길거리에 넘쳐났던 정치인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내건 ‘NO JAPAN’ 현수막도 비슷한 경우다. 

정치를 너무 쉽게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 때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익을 보려는 얄팍한 수일 뿐, 그것이 상대당을 이기는 길도 일본을 추월하는 길도 아니다. 그리고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민생에 집중하라. 그것이 유일한 답이다.

신철희 여양 한강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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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5 [14:0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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